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칠천량 해전 (문단 편집) == 개요 == || {{{#!wiki style="margin: -5px -10px -5px" [youtube(1erlNFByifQ)]}}} || || 2021년 4월, [[국방TV]]([[국방홍보원]])의 전투 요약 || [[정유재란]] 당시였던 1597년 ([[선조(조선)|선조]] 30년) 7월 16일 새벽, 경상도 [[거제도]]와 [[칠천도]] 사이의 해협 '칠천량'에서 [[조선 수군]]이 [[일본군]]의 기습을 받자, 삼도수군통제사 [[원균]]이 '''막다른 해협으로 함대를 몰아넣고, 함대를 스스로 불사르고, 육지로 병력들을 내려 흩어지게 해 모두 학살당하게 한 패전.'''[* 후술하겠지만 기초적인 야간 사주경계와 퇴각로 등을 정탐해두는 초급 지휘관이어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결과다. 원균의 심각한 자질 부족을 드러낸 전투다.] '''후폭풍은 엄청났다.'''[* 본 해전의 결과만 정리. 이후 [[이순신]]이 귀환하여 벌인 [[어란포 해전]], [[벽파진 해전]], [[명량 해전]] 등의 결과는 각 해당 문서들에 정리.] * 1월 12~14일 일본군의 부산 재상륙부터를 [[정유재란]]으로 보기도 하나, 양측은 이전과 똑같이 대치 및 국지전만 있었다. 하지만 7월 16일 이 해전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면서부터 일본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. 즉 '''[[정유재란]]의 시작이 된 전투'''다. * 조선군의 바다 방어선이 뚫림으로써, '''전라도가 왜군에게 장악당했다.'''[* 충청도까지 넘어갈 뻔 했지만, [[직산 전투]]를 통해 다행히 저지되었다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